[경남일보][아침논단]대학생을 볼 수 없는 도시를 염려한다
- onedongnam
- 2024년 10월 7일
- 2분 분량
권진회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필자는 1971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진주에서 20㎞ 남짓한 시골이었지만 진주와의 차이는 컸다. 75년 여름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70년대 말까지 아궁이에 나무를 사용하던 집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우리 동네에는 대학생이 거의 없었다. 한 학년에 100명 남짓 되는 초등학교가 있었고, 인접한 동네에 중학교도 있었지만 당시의 농촌 형편에 대학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참 큰 결심이 필요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생 3분의 1이 바로 공장으로 일하러 가던 때의 이야기다.
그 후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하루 세 끼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이른바 학령인구가 많아지니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대학설립인가가 났고 크고 작은 대학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고등학교 졸업생 5분의 4가 대학에 진학했고, 전국 어디서든 길거리에서 아주 쉽사리 대학생을 만날 수 있는 시절이 20년 이상 지속되었다.
다시 세월이 흘러 2000년대에 들어서며 인구감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초반 70만 명 정도이던 초등학교 입학생이 2020년대 말에는 30만 명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대학 입학 정원은 50여만 명을 유지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지방대학의 입학 정원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데 반해 수도권대학의 정원은 유지되거나 부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은 대부분 서울 아니면 수도권으로 가고 싶어 한다. 서울 생활과 문화에 대한 선호, 부모를 떠나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 지방대생의 상대적 박탈감 등이 그 이유일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수도권대학의 학생 수는 줄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 예산으로 수도권대학의 정원감축을 시도한 적이 몇 차례 있다. 그러나 수도권대학 특히 사립대학의 경우 판단은 쉬웠다. 정부의 예산지원은 대체로 5년간 이루어진다. 그러나 한번 줄인 학생은 학교가 존재하는 한 계속 예산에 영향을 미친다. 등록금과 학생 수를 곱하고 학교의 기대수명을 추가로 곱하면 5년간 정부의 한시적 예산지원을 받는 것과,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학생을 계속 유지하는 것의 수지타산은 명확하다. 대부분 대학이 5년의 재정지원을 못 받더라도 학생을 유지하는 쪽을 택했고 지금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 결과는 어떤가? 벚꽃 피는 순서가 아니라 그냥 여기저기서 대학은 문을 닫거나 닫을 준비를 하고 있고, 학생들의 학업능력 저하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머지않아 대학 입학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보다 10만 명 이상 많아지게 되는데 이는 1000명을 모집하는 대학 100개가 사라져야 하는 상황과 같다. 사라지는 대학은 모두 지방, 그것도 중소도시나 농촌지역 대학이 될 것이다.
대학은 단순히 교육만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교육을 통해 산업과 문화와 행정 등에 필요한 우수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물론, 수천 혹은 수만 명이 모여 살면서 소비하고, 생산하며 경제를 돌게 하는 중요한 경제주체이다. 경상국립대의 경우 학생과 교수, 직원을 합치면 2만 8000여 명에 달하고, 병원까지 합치면 거의 3만 2000여 명에 달하는 조직이다. 진주의 인구 35만, 서부경남의 인구를 다 합쳐 100만 명이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상국립대가 차지하는 경제적 위치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경상국립대 없는 진주, 서부경남을 상상할 수 없다.
지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학이 살아남아야 한다. 지역과 대학은 경제공동체이며 동시에 운명공동체이다. 정치적 입장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경남도와 기초지자체, 대학이 지속가능한 대학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대학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변화를 감내해야 할 것이다. 1970년대를 다시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방에서 대학생을 볼 수 없는 시대를 살게 될지 모른다. 이는 초등학교 졸업생 3분의 1이 바로 공장으로 일하러 가던 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댓글